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도어 폰 보크 (문단 편집) ===== [[바르바로사 작전]] ===== 1941년 2월 2일, 보크는 히틀러에게 호출되어 소련 침공의 개요를 전달받았다. 보크가 맡고 있던 B집단군은 중부집단군으로 재명명되어 좌익이 북부집단군, 우익의 남부집단군과 함께 소련을 침공할 주역 부대가 되었다. 침공군의 세 갈래 중 가장 강력했던 중부집단군은 4군([[귄터 폰 클루게]]), 9군(슈트라우스), 2기갑집단([[하인츠 구데리안]]), 3기갑집단([[헤르만 호트]]), 그리고 공군의 제2항공전대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보크가 짠 계획으로는 중부집단군은 원래 프리피아트 습지를 거쳐 [[모스크바]]로 닥돌하려고 했으나, 히틀러는 계획을 변경하여 [[스몰렌스크]]와 민스크에 포진한 소련의 서부 전선군을 포위 섬멸하고 이후 북부집단군을 조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소련군을 섬멸하지 않고 후방으로 도주시키면 [[나폴레옹의 몰락]]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히틀러의 판단 때문이었다.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자 보크가 지휘하는 독일 중부집단군은 소련군을 가볍게 물리치며 소련군 서부전선군이 포진한 스몰렌스크-민스크 방면으로 맹진격했다. 보크는 7월 3일에 끝난 비아위스토크-민스크 전투에서 [[https://en.wikipedia.org/wiki/Dmitry_Pavlov_(general)|드미트리 파블로프]] 대장이 지휘하는 소련군 60만을 포위, 이중 30만 명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는 대승을 거뒀고, 직후 벌어진 스몰렌스크 전투에서 [[세묜 티모셴코]]가 지휘하는 60여만 명의 병력을 포위하여, 30여만 명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는 대승을 거두었다(8월 5일) 모스크바로 가는 길에 버티고 있던 소련 서부 전선군의 대부분인 120만을 섬멸한 데다가 교통의 요지인 스몰렌스크를 점령했기 때문에, 보크는 모스크바로 가는 길을 속행하려고 했으나, 히틀러는 이를 중단시키고 일부 부대를 비교적 고전하고 있는 남부집단군으로 전출시키고, 중앙집단군 주력은 현 위치에서 정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전출된 제2기갑군 사령관 [[하인츠 구데리안]]은 전후 저술한 회고록 <기계화부대장>에서 "그때 모스크바를 쳐야 했는데 안 쳐서 결국 전쟁 전체가 패전이 되었다."고 주장했으나, 현재 연구로는 당시 중부집단군은 격전으로 엄청난 소모가 있었기 때문에 개편 없이는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었다는 게 정설이다. 어쨌든 9월 하순까지 약 2달 간 중부집단군은 스몰렌스크에서 정지하고 부대 개편과 정비를 하고 있었고, 중부집단군에서 전출된 구데리안군은 남부집단군의 [[키이우|키예프]] 함락을 조공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